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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고유한 역사적 경험과 발전 과정을 바탕으로, 5세기 후반 왕·후호를 채택하여 활용하였다. 백제의 왕·후호에 대한 역사적 경험은 3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漢代부터 西晉代까지 수백 년간 중국왕조는 郡縣을 통해 주변 外夷와 三韓의 유력 세력에게 ‘王·侯·君·長’ 등의 爵號를 수여하면서 이들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다원적이고 중층적인 삼한 사회에서 유력한 대세력만이 왕·후호를 가진다는 특별한 인식이 성립되었다. 백제 역시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거치면서 중국 爵號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3세기부터 6세기 초까지 백제는 한반도 서남부 일대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백제는 복속한 소국의 수장층을 ‘온존’시키고 이들을 통해 복속지의 인적·물적 자원을 수취하였다. 백제가 복속한 수장층을 왕·후로서 임명하였는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복속한 소국 수장층의 정치적 권위와 기득권을 인정해주는 일종의 ‘分封’의 형식을 적용한 것이 주목되며, 이를 상징하는 고고자료가 金銅冠帽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백제는 加耶諸國을 상대하면서 일종의 ‘宗主國’을 자처하였다. 이처럼 백제는 지역 유력 세력의 일정한 독자성을 보장하면서 중앙의 통제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爵的 질서’를 인정하는 지배방식을 활용하였다. 백제의 지배방식은 중앙세력에게 특정 지역의 왕·후호가 허용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3세기 이래의 왕·후호에 대한 이해는 5세기 후반 개로왕과 동성왕대에 전격적으로 채택되어 표명되었다. 이것은 관등제와는 별개로, 中國 官爵의 假授를 통해 자율적인 인사권을 행사하고자 했던 개로왕과 동성왕의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개로왕과 동성왕은 자신에게 충성하며 功을 세운 왕족과 귀족에게 將軍號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장군호를 받은 일부 功臣에게는 특정 지역의 왕·후로서 封爵하여 그 정치적 권위를 부여하고 ‘食邑’을 지급하였다.
장군호와 왕·후호 이전에 이미 爵的 성격을 지닌 官等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신분’에 따라 임명과 승급이 제한되는 관등제의 운영 방식과는 달리, 장군호와 왕·후호의 임명 기준은 ‘국왕’ 중심으로 설정되었다는 게 주목된다.

Based on Baekje’s unique historical experience and development process, this article was written assuming that Baekje would have adopted and utilized a system for Wang ·Hu title (王·侯號) in the late 5th century. From the Han Dynasty to the Western Jin Dynasty, local governments (郡縣) awarded titles to Wang ·Hu·Kun·Jang title (王·侯·君·長號) to appease and control the influential forces of the Three Hans (三韓). Thus, a perception was established in the Three Hans that only the most influential people would receive the Wang ·Hu title. Baekje would likely also have shared this perception through its historical experience with the Wang ·Hu title.
From the 3rd century to the early 6th century, Baekje gradually expanded to the southwest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Baekje maintained its subjugated influential forces and received human and material resources from the subjugated land through them. It is noteworthy is that it applied a kind of feudal governing method (分封) that recognizes the political and vested rights of influential forces. This approach was also made in negotiations with other foreign countries such as
King Gaero and King Dongseong bestowed the military officer title (將軍號) as a recognition of outstanding merit to the royal family and aristocrats who were loyal to them and made contributions to the kingdom. Some contributors were granted political authority by being invested with the Wang ·Hu title in a specific area and reaped economic benefits by Tax-village (食邑) granted to them. Originally, Tax-village were granted through appointment to and promotion in the official rank. However, unlike the official rank gradation system in which appointment and promotion were restricted depending on the individual’s status, the king’s will was prioritized in the Wang·Hu title.

목차

국문 초록
I. 머리말
II. 삼한 사회의 王·侯號에 대한 역사적 경험
III. 백제의 복속지 지배방식과 王·侯號의 활용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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