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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리 제사시설은 금강 하구에 자리하고 있다. 그 지리적 조건은 한성 도읍기 때보다 475년 웅진천도 후 중요해졌다. 금강하구의 재지세력 중 하나가 서천 봉선리 재지세력이다. 서천 봉선리 재지세력은 청동기시대 형성되기 시작하여 원삼국~백제시대까지 지속적으로 금강하구인 서천지역 대표적 재지세력이었다. 서천 봉선리 재지세력은 한성도읍기 백제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이 시기 서천 봉선리 재지세력이 성장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인근 지산리 유적에서 확인된 제철유구에서 확인되었듯이 이 일대는 철의 유통과 관련된 지역이다. 서천 봉선리 수혈식석곽묘에서 군사적 집단으로 추정될 만큼 다수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다수의 철기류는 봉선리 재지세력이 철의 유통과 관련하여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들은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백제 문화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475년 백제의 웅진천도 후 상황이 급변하게 되었다. 백제 중앙 정부는 대외교섭 창구인 금강 하구를 통제하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해 기존의 재지세력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였다. 반면 봉선리 재지세력은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을것이다. 이 시기 봉선리 제사시설이 주목된다. 동성왕은 금강 하구 지역으로 사냥을 자주 나가면서 이 지역을 순수하였는데, 그때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도 동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통해 동성왕은 재지세력을 중앙 정부로 통제하고자 하였다. 반면 봉선리 재지세력은 중앙정부와 밀접하게 연결되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 노력의 흔적이 봉선리 제사시설로 나타났다. 제사시설은 동성왕의 사냥행위와 관련이 있다. 동성왕은 이곳에서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드림으로써 금강하구 일대의 재지세력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하늘과 산천제사는 동성왕의 사냥행위와 관련한 일시적 제사행위였다. 본래 봉선리 제사시설은 바닷물이 가까이 들어와 기항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으로 보아 바다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성격을 지녔다. 봉선리 재지세력은 중앙정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기존 세력을 유지하고자 하였으나, 동성왕은 기존의 재지세력을 통제하여 그 세력을 쇠퇴시키고자 하였다. 그로 인해 봉선리 재지세력은 점차 그 세력이 쇠퇴하고 말았다.

One of the main forces at the mouth of the Geumgang River is the Seocheon Bongseon-ri. The ruins of Jisan-ri, near the Three Kingdoms Period, rose rapidly from the lower reaches of the Baekje Kingdom, becoming the most powerful force in the Seocheon area. The reason why the Jaeji forces in Bongseon-ri, Seocheon, grew during this period was that they embraced Baekje culture more than other regions. And as confirmed by the steel basin identified at the nearby Jisan-ri site, this area is an area related to steel facilities.
However, the situation changed rapidly after Baekje had transferred its capital to Woongjin in 475. The central government of Baekje wanted to secure the mouth of the Geumgang River, a channel for foreign negotiations. To do so, it was necessary to restructure existing landowners. On the other hand, the Bongseon-ri Jaeji faction have might tried to overcome the crisis. During this time, the relics of Bongseon-ri"s ancestral rites appeared. King Dong-seong often went hunting in the mouth of the Geumgang River, possibly accompanied by sacrificial rites in the sky and in the mountains. By doing so, the king wanted to rally the wealth of the people to the central government. On the other hand, the Bongseon-ri Jaejik faction might have wanted to be closely linked to the central government. The stone chamber tomb is a figure of the Bongseon-ri Jaeji forces that want to be closely associated with the central government.
Heaven and Sanchon Temple we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king"s own ritual, and the relics of Bongseon-ri changed after the reign of King Dongseong. The ritual site in Bongseon-ri may have been converted to wish for a sea safe voyage, such as the Jukmakdongjeok, because the sea water comes near and serves as a port of call. However, in the course of the realignment of the army, the forces of Bongseon-ri have declined.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한성도읍기 백제 문화의 수용과 봉선리 재지세력 성장
Ⅲ. 웅진천도 후 봉선리 재지세력의 쇠퇴
Ⅳ. 봉선리 제사시설의 성격
Ⅴ. 맺음말
【참고 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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