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일본 중세의 예능을 대표하는 독자적인 고전극 노(能)의 극 형식은 정령이 나타나는 무겐노(夢幻能)가 중심을 이룬다. 그리스 연극의 코러스와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는 지우타이(地謡)가 어떤 과정을 통해 노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는지 그 발생사적 연구가 활발하지 않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지우타이(地謡)라는 명칭이 정착된 것은 에도 (江戶) 전기이다. 제아미 시대의 노 텍스트에는 합창을 지시하는 동음[同音]에서 지[地]라는 말이 무로마치 시기(室町;1333-1573)에 사용되었다. 현행 노와 같이 지우타이 집단이 독자적으로 노래를 담당한 것과 달리 동음[同音]은 무대에서 등장하는 전원이 합창을 하는 형태를 하고, 지[地]의 경우는 그 장면의 주인공 이외의 전원이 합창을 하는 형태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이처럼 텍스트에 표기되어 있는 부분과 실제 공연에서 와키(脇, 조연), 시테(爲手, 주인공), 츠레(連, 동반인물)라는 등장인물이 어떠한 연출상의 약속에 의해 합창 범위에 속하였는지, [同音]이 [地] 그리고 [地謡]로 불리어지는 과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존재하는 지우타이의 코러스 기능을 무겐노(夢幻能)의 극 형식에서 살폈다. 유령이나 정령 등 죽은 자나 초자연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무겐노는 마에바(前場)와 노치바(後場)라는 전후 이장(二場)의 구조를 갖고 있다. 무겐노의 주인공은 마에바에서 잠시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마에시테(前爲手)와 노치바에서 지상에서 소멸해버린 자기 존재에 대한 과거를 재현하며 자신이 돌아가야 할 저 세상으로 사라지는 노지시테(後爲手)로 묘사된다. 제아미의 무겐노 구성의 정점은 바로 마에바의 마에시테의 이야기와 노치바에서 노지시테의 낭창과 춤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지우타이는 시종일관 가면으로 가려진 시테의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며 마에바에서 와키와 시테의 문답 이후 개입하기 시작해서, 시테가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 노치바로 갈수록 지우타이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다. 마지막 마이(舞)장면에서 시테의 쇼사(所作, 몸짓)가 명시된 지문을 제외하면 완전히 지우타이의 노랫말로 종료된다. 시테의 몸짓은 신체 안 깊숙이 억제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연극적인 시공간을 지우타이는 오로지 정좌하고 앉아서 합창만으로 와키와 함께 시테를 대변하며 노의 연기 공간을 보다 깊게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본문은 무겐노의 주인공들이 ‘몽환회상(dreaming back)’을 거듭하며 과거 재현에 집착하는 제아미의 무겐노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 한, 그리고 집착을 주제로 한 네 번째(四番) 상연물 ‘구루이모노(狂亂物)’에 속하는《니시키기(錦木)》와 제아미 이후의 작품 《도조지(道成寺)》를 중심으로 지우타이의 역할을 보면, 준몽환노에 속하는 <도조지>는 등장인물이 다수 늘어나면서 배우 일인주의(役者一人主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반면에 다수의 인격을 소화하고 있는 지우타이의 역할이 축소되고 변형된다. 노(能)는 중세의 무상(無常)을 미의식으로 무겐노라는 특유한 극 형식을 빌려 표현하고 있다. 제아미의 무겐노에서 동양의 코러스라고 할 지우타이의 존재는 무겐노의 본질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또한 연기공간을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의 연기 영역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키워드

노, 제아미의 노구조, 무겐노, 지우타이, 코러스, 동음, 노의 극작술, 죽은 자, 주인공 시테, 기요쓰네(淸經), 수라노, 니시키기(錦木), 도조지(道成寺)

참고문헌(19)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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