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ical value of the “The Dalian newspaper” can be summarized in six ways as follows: First, basic facts and concepts can be used as feed to newly establish and establish accurate chronology. Second, it can be used as a useful resource for discovering and selecting new independence activists through various human history or information on independence movement organizations. Third, through a review of the Shanghai Provisional Government and its relations with the Soviet Union, we can expect to secure new research time and research results in re-establishing the foreign affairs history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Shanghai. Fourth, important clues are also found to shed new light on the history of the Korean Communist movement in Northeast China. Through the review of articles on the riots on May 30, 1930 and the riots that erupted on the Gildon Line on August 1, 1930,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Korean-Chinese Communist Party and the Communist Party of China can be reexamined. Fifth, it can shed new light on the spatial significance of the city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ixth, it is the status of anniversaries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e independence activists actively utilized the anniversary to develop an effective independence movement. Through the anniversary event, they were able to cultivate their indomitable will for independence, express their presence, and maximize the effect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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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련은 여순과 함께 러시아와 일본이 만주지역을 침략하는 중요한 거점 도시였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련과 여순을 러시아로부터 넘겨받았다. 일 본은 대련에서 일본인 사회를 통합하고 정부의 식민 정책을 홍보하고 신문 여론전을 펼칠 목적으로 일본어 신문 3종을 발행했다. 『요동신보』(1905년), 『만주일일신문』(1907년) 그리고 『대련신문』(1920년)이 바로 그것이다. 『대련신문』은 전성기를 누리던 1935년 5월 현재 지사・지국・통신부・판매소는 70 남 짓에 달하고, 직원은 500명, 신문 쪽수는 14면, 발행 부수가 가장 많은 신문으로 성장했다. 『대련신문』에는 물론 일본과 일본인에 관한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여기에 못지 않게 중국, 소련 그리고 한국과 관련 기사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한국 관련 기사만 무려 1,150여 개를 추출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필자는 한국 독립운동과 관련된 기사를 8개 부류로 나누어 검토했다. 상기 검토를 통하여 대련신문이 지니는 사료적인 가치에 대해 아래와 같은 여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본적인 사실관계와 개념을 새롭게 규명하고 정확한 연대기를 구축하는 사료로 이용할 수 있다. 둘째, 다양한 인물 약력이나 독립운동단체 에 대한 정보를 통하여 새롭게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선정하는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셋째,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소련과의 관계 기사에 대한 검토를 통하여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외 관계사를 재정립하는데 새로운 연구시각 확보와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넷째, 중국동북지역 한국공산주의운동사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도 발견된다. 1930년 5월 30일의 폭동과 8월 1일의 길돈선 연선에서 폭발한 폭동에 관한 기사 검토를 통하여 재만한인공산주의자와 중국공산당의 관계를 재조명할 수 있다. 다섯째, 다섯째, 한국독립운동사에 도시가 지니는 공간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 대련을 비롯한 봉천・하얼빈・길림 등 대도시는 물론이고 국경 도시(신의주와 단동; 만포와 집안; 혜산과 장백; 회령과 삼합; 남양과 도문; 경원과 훈 춘)의 지정학적인 위치나 교통망에 대한 검토를 통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이동 경로, 독 립운동 자금 조달과 무기 구입 루트, 해외 독립운동기지와 국내의 연관성을 밝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여섯째,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기념일이 차지하는 위상이다. 독립운동세력들은 기념일을 적극 활용하여 효과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기념일 행사 를 통해 불굴의 독립 의지를 가다듬을 수 있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고, 독립운동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광대학교는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한중관계연구원(원장 정세현)을 설립하였다.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중관계연구원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다. 이로써 한중관계연구원은 각 분야의 전문 연구소를 통해 한중간 현안들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며 중국과의 교류를 선도하며 중국 지역전문가를 양성하는 명실상부한 중국문제 특성화 전문 연구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