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이 글은 냉전의 시간을 ‘전후’라는 감각으로 산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냉전의 폭력을 둘러싼 담론의 분석을 통해 살펴본 것이다. 이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이런 감각이 유지되는 동안에도 ‘전후’ 일본은 냉전과 ‘연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일본국헌법>의 존재가 중요하다. 무력에 의한 분쟁해결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에 줄곧 ‘평화헌법’이라 불린 <일본국헌법>은 냉전이라는 적대성의 세계로부터 일본을 ‘분리’시키는 논리적이고 때로는 정서적인 근거였기 때문이다. <일본국헌법>이 존재하는 ‘전후’의 일본은 ‘평화’의 장소이며 전쟁과 같은 ‘폭력’과 무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전후’라는 공간이 ‘외부=전쟁/내부=평화’와 같은 폭력을 둘러싼 지정학적 상상력을 동반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전쟁’, ‘기지’, 그리고 ‘핵=원자력’은 ‘헌법=전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것들은 부단히 일본과 냉전의 ‘연루’를 상기시키며, 따라서 ‘전후’가 설정하는 상상적 경계의 ‘교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일본은 결코 냉전의 외부에 있지 않았다. ‘전후’와 ‘냉전’의 경계는 ‘이데올로기(허위의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냉전의 시간은 자신들의 시간과 무관하게 인식되었고, 따라서 ‘전후’ 관념의 이데올로기적 성격도 거의 의식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후’의 담론 안에서 침범하는 냉전의 폭력은 어떻게 처리되었던 것일까? ‘전후’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어떤 의미작용을 통해 ‘은폐’되었던 것일까? 분석의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이라는 폭력과 재일조선인의 폭력은 외부화=타자화의 방식으로 ‘전후’와 분절되고 있었다. 한편 일본 내부에 존재하는 냉전적 폭력을 상징했던 미군의 폭력은 1950년대 ‘가해자의 폭력’으로 표상되었지만, 기지의 편재성이 사라진 1960년 이후 일본의 안보와 관련된 ‘수호자의 폭력’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밟았다. 그 결과 1950년대의 맥락 안에서 재일조선인과 미군기지는 냉전의 폭력을 ‘전후’의 공간으로 유입하는 침입자의 표상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동렬에 위치했다. 핵이라는 또 하나의 냉전적 폭력이 ‘평화이용’이라는 담론과 결부되어 ‘전후’일본에 수용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피폭의 기억’이 핵에너지의 도입을 거부하는 논리가 아니라 일본인이야말로 핵의 평화적 이용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라는 담론을 지탱하는 근거가 되고 있음도 확인했다.

키워드

냉전의 폭력, 일본국헌법, 한국전쟁, 미국표상, 핵=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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