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본 논문은 최근 다수 출토되고 있는 고려시대 철제 솥의 명칭과 기능 시기에 따른 기형의 변화를 탐색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통상 고려시대 철제 솥은 다리의 유무에 따라 다리가 있으면 鼎, 다리가 없으면 釜라 명명되었다. 그러나 다리의 유무에 따라 정과 부를 구분하는 것은 후대에 명명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다리가 있는 솥 역시 釜라 불렀다. 따라서 다리의 유무에 따라 정과 부로 구분하는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고려시대 출토된 철제 솥은 그 형태상 다리의 존재 유무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다리가 없는 솥은 비교적 큰 규모로 입지름이 큰 것은 50㎝ 가량이고 작은 것은 26㎝이며 평균 35㎝가량 된다. 이는 다리 있는 솥의 평균 입지름이 23㎝임에 비해 확실히 크다. 다리 없는 솥은 부뚜막에 얹어 사용하였다. 다리 없는 솥은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형에 변화가 발생하는데 ‘U’자 형이고 넓은 입지름 가진 기형이 납작해지고 구경도 동체에 비해 좁아진다. 이러한 변화가 시간의 추이에 따라 보편적으로 발생한 것인지의 문제는 더 많은 자료의 검토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나 경향은 가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리 있는 솥은 다리 없는 솥에 비해 크기가 작고 저부가 평평하다. 이 솥은 조선시대로 접어 들어서도 기형의 변화는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리 없는 솥과 차이가 있다. 서긍이 죽부라 부른 솥은 이 다리 있는 솥으로 보이며, 조선후기 이 솥은 ‘鏀口’라 불렸다. 노구 솥은 다리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으나 조선시대까지 널리 쓰인 조리기구였다. 다리 없는 솥은 부뚜막에 걸쳐 두고 주고 밥을 하거나 각종 식재료를 삶는 데 사용하였고 다리 있는 솥은 별도의 장소에 불을 지펴 사용하였는데 삶기, 데치기, 익히기 등 조리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능을 맡았다. 이들 솥은 특정 마을 혹은 집단에 의해 鑄造되었으며 이들 집단이 보습, 볏과 같은 다른 철기도 생산하였다. 이러한 생산형태는 조선후기까지 지속되었다.

키워드

다리 있는 솥, 다리 없는 솥, 鏀口, 부뚜막, 취사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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