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현대예술에서 기존에 상영되었던 영화아카이브 자료들을 재활용하여 새 로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전유주의 비디오아티스트들을 연구하고, 이를 질 들뢰즈의 ‘-되기’ 개념으로 적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영화아카이브 이미지를 현대의 예술작품에 차용하는 것은 소위 ‘전유예술 (appropriation art)’이라는 개념으로 불린다. 영화이미지의 전유를 시도하는 작가들은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던 영상들을 왜곡, 해체, 절단, 삽입, 콜라주(collage), 아상블라주(assemblage)와 같은 기법을 사용한다. 이 기법을 실험영화에서는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기법들을 통하여 영화이미지는 원작과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사용되고, 작가들은 자신이 의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표현한다.
이 논문에서는 전유주의 비디오아트에서도 영화사에서 유명한 감독들의 작품들을 차용하여 영화아카이브의 예술적 전유를 시도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논하기로 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되기 개념의 적용에 가장 근접한 작품들이기도 하고 수많은 전유주의 비디오아트를 선별할 수 있는 주제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더글라스 고든(Douglas Gordon)의 <24시간 사이코(24 hour Psycho)>라는 작품은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를 재활용하여 예술적 전유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고든의 히치콕-되기로 재해석해볼 수 있는 것이다.
브루스 코너(Bruce Conner)는 <영화(A movie)>, <리포트(Report)>, <코스믹 레이(Cosmic Ray)>에서 역사 속 전쟁장면, 뉴스장면, 헐리우드 영화 장면들을 재활용하여 고발의 의미를 담은 전유주의적 작품을 선보였다. 폴란드 작가 립진스키(Zbignew Rybczynski)는 <계단(steps)>에서 에이젠슈타인의 <전함포템킨>의 오데사 장면을 크로마 키를 활용하여 재구성한다. <전함포템킨>의 학살장면 사이사이에 현대인들을 삽입시켜 흑백과 칼라, 무성과 유성, 비참과 유희를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립진스키는 에이젠슈타인-되기를 시도한 것이다.
피르길 비트리히(Virgil Widrich)는 <빠른 영화(Fast film)>에서 액션영화감독-되기를 시도한다. 그는 액션 영화로 유명했던 300개 이상의 아카이브 작품들의 필름들을 골라 일일이 수작업으로 잘라낸 뒤 자신의 작품 속에 콜라주하여 배치시켰다. 수없이 바뀌는 장면들속에서 여인 구출이라는 일관성 있는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훌륭하다.
질 고드밀로우는 파로키-되기를 시도한다. 고드밀로우의 <파로키가 가르쳐 준 것들>은 자신이 만든 칼라필름 위에 파로키의 오리지널 흑백 필름 <꺼지지 않는 불>을 중첩한다. 베트남전에 쓰인 네이팜탄의 제조를 고발한 파로키의 작품이 60년대의 도덕적․정치적 책임감을 촉발시켰다면, 고드밀로우는 원작과의 연결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연대기적인 차이를 강조한다. 그 차이의 강조를 통해 미국에서 개봉된 적이 없었던 파로키의 영화에 대중적 접근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제니퍼 맥코이와 케빈 맥코이는 큐브릭-되기를 시도한다. <201:스페이스 알고리듬(201 : space Algorithm)>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공상 과학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다시 편집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전시실에 설치한다. 큐브릭의 영화를 보거나 보지 않았던 모든 관객들에게 자기 나름대로의 편집된 장면으로 큐브릭의 영화를 접할 수 있게 해주고 감독의 편집과 관객 자신의 편집을 비교할 수 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