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부여는 백제 멸망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망각된 고도(古都)였다. 1920년대까지 산견되는 백제와 부여의 이미지는 쇠망한 고대왕국의 그것이고, 몰락한 역사의 한 장면에 대한 회한의 정조가 자동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부여라는 도시에 대한 근대적 이미지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29년을 전후한 상황이었다. 그 중요한 계기로는 1915년 발족된 부여고족보존회가 1929년 재단법인으로 변경된 것을 들 수 있다. 이후로 신문기사나 기행문에서 엿보이는 부여에 대한 소개는 경주나 평양에 필적하는 도시로 부여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하고 있다. 부여는 이제 경주나 평양에 맞서는 유서깊은 고도로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부여는 내선일체라는 당대의 국책에 부응하는 장소로 소환되었다. 일본과 조선의 역사에 무언가 의미 있는 관계가 있었다면, 그것은 부여라는 장소를 제외하고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통해 부여의 표상을 새롭게 주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1939년 3월 총독부가 부여신궁 건립계획을 발표하였다. 신도(神都)로 새롭게 탄생한 부여는 더 이상 잊혀진 소읍이 아니라, 과거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는 도시로 재조명된다. 부여를 내선일체를 강화하는 정신적 전당으로 삼고자하는 기획으로 마련된 신도건설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국책을 수행하기 위한 사명을 부여하였다. 부여를 내선일체의 영지이자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내선의 ‘피’의 친연성을 증명하는 장소로서의 신도로 건설하고자 했던 1940년대 초반의 움직임에 부응하는 작품으로 김동인의 장편역사소설 『백마강』을 들 수 있다. 친일문학의 대표격으로 여겨져야 할 『백마강』과 비교해서 현진건의 미완의 장편 『흑치상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민족의 비애를 불러일으키는 몰락한 고대왕국의 이미지와 일본과의 혈통적 친연성의 증거가 되는 고대국가의 이름 사이에서 백제라는 표상은 부유하고 있다.

키워드

부여, 백제, 고도(古都), 신도(神都), 백마강, 흑치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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