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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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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들어 다나카 다케오(田中健夫)가 주장하기 시작한 ‘바다의 역사’에 입각한 새로운 왜구 연구는 왜구의 민족 구성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국과 중국 학계의 비판은 주로 이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에 대해 일본 학계는 한중 학계의 ‘민족주의’를 초월적인 입장에서 비판하는 등, 논쟁은 생산적인 전개를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 국내 학계로 눈을 돌리면, 바다의 시좌를 거쳐 탄생한 왜구상은 단지 왜구에 대한 평가를 넘어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정권, 더 나아가 근세국가 전반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졌다.
다나카가 제창한 동아시아 통교권의 한 주체로서의 왜구는 후지키 히사시(藤木久志)가 제안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바다의 평화령’과 결합함으로써 평화로운 교역 질서의 보호자로서의 통일정권론을 낳게 된다. 이후 동아시아 해역사는 새로운 전개를 보이게 되는데, 그 중심에 있는 연구자는 아라노 야스노리(荒野泰典)와 무라이 쇼스케(村井章介)였다. 두 사람은 다나카가 왜구를 바다의 역사와 접목시켜 탄생시킨, 국가에 포섭되지 않는 자유의 민으로서의 왜구상을 계승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왜구를 명 중심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새로운 교역 질서의 구축자로까지 평가했다. 이로써 왜구는 더 이상 불법적인 반역자가 아니라 중화질서를 해체하는 신질서의 기수가 되었다.
16세기 이래 동아시아해역에서 전개된 왜구와 통일정권 성립의 역사를 구체제의 해체와 신질서의 대두 과정으로 설명하는 역사상은 결국 중화질서로부터의 일본의 자립・이탈이라는 계기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히데요시, 그리고 그 이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명에 요구한 감합무역 부활 요구 등을 살펴볼 때 오늘날 일본 대외관계사 연구가 제출하는 근세 일본의 ‘자립’이라는 역사상은 현대 역사가들의 내셔널리즘이 깊이 반영된 자의적인 해석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바다의 역사가 일본 대외관계사 연구에 가져온 변화를 통일정권론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데 있다. 본문에서는 먼저 바다의 역사가 초래한 왜구상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고, 그것이 도요토미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미친 영향을 개관한 뒤, 오늘날 일본 대외관계사 연구가 제시하는 근세 역사상과 그 문제점을 살펴본다.

Tanaka Takeo"s new research on Waegu/Wako(Japanese pirates), which began in the 1980s, sparked international controversy over the ethnic composition of Waegu. Criticism from Korean and Chinese academia is mainly related to this issue. But Japanese academia criticized the "nationalism" of Korean and Chinese academia, and the controversy was not productive. However, if you look at Japanese academia, you will find that the statue of Waegu, which was born through the perspective of the sea, is not just about evaluating Waegu itself, but also about Toyotomi Hideyoshi regime and early modern state.
Tanaka"s suggestion that Waegu, an important member of the East Asian intra trade, combine with Fujiki Hisashi"s "Sea Peace Order(海の平和令)" to create the Toyotomi regime as a guardian of peaceful trade order in East Asian seas. Since then, East Asian regional history has begun to unfold, with Arano Yasunori and Murai Shosuke at the center. They inherited Tanaka"s research and evaluated Waegu as a subject who challenged the order centered on the Ming dynasty. As a result, Waegu were no longer illegal rebels, but became the flag bearer of the new order to break up the Chinese order.
The history of Waegu and the establishment of Toyotomi Hideyoshi regime in East Asian seas since the 16th century is explained by the dissolution of the old system and the rise of a new order. However, such a history reflects the nationalism of modern historian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hanges that ‘the history of the sea’ has brought about in the study of Japan"s history of foreign relations, focusing on the evaluation of Toyotomi Hideyoshi regime.

목차

국문초록
1. 방법론의 시대
2. 왜구론의 궤적
3. 동아시아해역 속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
4. 자립이라는 환상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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