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대한제국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갈라진 평가는 대한제국과 대척점에 놓여 있었던 독립협회에 대한 평가와 맞닿아 있다. 즉 대한제국의 ‘광무개혁’을 자주적이고 근대적인 것으로 평가했던 역사가들은 독립협회가 갖고 있었던 친일적, 반민중적 성격에 주목했다. 반면 독립협회가 민권을 대변하는 기구로서 근대시민사회의 형성에 주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았던 역사가는 대한제국의 보수적, 수구적 성격에 주목했다”(김윤희 2004) 라는 역사학계의 평가에서도 드러나듯이 한국근대사에서 고종황제의 대한제국은 그 성격과 주체, 역사적 의미에 있어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는 시기이다. 본고에서 대한제국 시기를 연극학적 개념을 통한 극장국가로 이해하고 극장국가를 구성하는 스펙터클을 문화적 퍼포먼스로 분석한 것은 문자로 기록되지 못한 당대 신민들의 경험과 반응을 남아있는 자료를 통해 가능한 복원하여 문자로 기록된 정사(正史)만으로는 규명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을 문화학적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이다. 이는 정사(正史)로 기록된 사실 중심의 역사학적 논의에서 제외된 경험된 내용을 복원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대한제국과 고종황제에 대한 정사(正史)의 내용 중 일제에 의해 왜곡된 기록이 마치 당대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재생산되는 식민사관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연극학적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 본 논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역사적 사실 혹은 진실을 규명하려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본고는 기존 역사학계의 논의와 그 성과를 바탕으로 고종황제의 대한제국 만들기 프로젝트가 창출한 정서적 효과를 문화사회사적 우회로를 통해 고찰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본고에서 전제로 삼고 있는 기어츠의 극장국가론은 국가의례와 국가행사의 스펙터클이 작동하는 수행적 과정에서 창출되는 연극적 효과를 통해 왕국의 권력을 유지하고 지탱한다는 관점으로 요약된다. 기어츠는 국가의례와 국가행사를 통해 한갓 직위(職位)에 불과한 왕이라는 존재가 권력을 현실화하는 존재로 부상할 수 있다고 했다. 기어츠의 진술은 구체적으로 국가의례와 황제의 신체 혹은 그것의 가시성의 관계가 권력에 대한 승인과 합의를 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어츠가 관찰한 발리 왕국의 국가의례와 대한제국의 그것이 일대일로 대응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기어츠의 극장국가론을 적용할 때에는 그가 발리 왕국의 국가의례를 기술하면서 부기한 은유적 표현을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본 고에서는 기어츠의 논의를 보다 구체적인 연극적 개념을 통해 분석에 적용했다. 곧 극장국가가 기반으로 하는 연극적 효과를 가능케 하는 “공연(Aufführung)”과 그것이 무대화(Inszenierung)되면서 작동하는 수행적 과정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고찰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극장국가의 구성에는 극장국가를 구성하는 주체(통치자)의 의도보다는, 연극을 경험하는 것이 그러하듯이, 극장국가의 스펙터클을 체험하는 관객들(신민들)의 반응이 더욱 중요하다. 관객들의 반응은 확정할 수 없는 일련의 연극적 효과이며 그것은 마치 공연장의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무대 위 공연의 의미와 느낌을 생산주체가 단일하게 조정하거나 확정할 수 없는 것처럼 고정할 수 있는 어떤 결과물로 확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술에 걸린 것처럼 이성적 판단이 자발적으로 중지된 한 순간, 일체감과 동질감을 지각하는 시공간의 통합의 한 순간 곧 현현(顯顯)의 순간이야말로 극장국가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극장국가를 구성하는 스펙터클에서 중요한 매개로 기능하는 생물학적 신체이자 정치적 신체인 황제의 신체는 보여질 수도 있고 감춰질 수도 있으며 존재할 수도 있고 부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보여지든 아니든, 존재하든 아니든 간에 그것의 존재감을 믿는 일체감의 창출이다. 강력한 정서적 환기, 일체감의 집단적 분기는 바로 극장국가의 스펙터클이 효과를 발하는 순간이며 극장국가의 내용이 기록된 문화적 재현물이 아니라 공연되는 경험에 가까운 것으로 기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황제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 것,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지만 황제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지리적 실체를 통해 황제의 존재를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극장국가가 이성적 판단과 주체적 선택을 넘어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극장국가의 효과는 텍스트적 요소로 환원되어 분석의 대상이 되는 개별적 문화적 재현물의 분석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본고에서는 1897년부터 1910년까지 존속했던 대한제국이 허약한 현실정치 기반과 불안한 외교 상황 속에서도 10여 년 동안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은 고종황제가 기획한 극장국가의 효과가 작동했기 때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대한제국기 황제권의 강화와 제국의 정체성 구축을 위해 진행된 일련의 문화적 퍼포먼스를 극장국가를 구성하는 스펙터클로 이해하고 분석,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1895~6년 한성도시계획을 시작으로 마련된 황제의 수도를 무대삼아 고종황제라는 주연배우를 내세워 조선인을 제국의 신민으로 호명하는 극장국가의 국가적 미장센을 구성한 것이 고종황제의 대한제국 만들기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극장국가의 국가적 미장센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기획된 일련의 문화적 퍼포먼스는 고종황제와 대한제국의 신민들의 관계 속에 마술과 같은 연극적 효과를 창출하며 제국의 정통성과 황제권 그리고 제국의 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음도 고찰했다. 고종황제의 허가를 맡아 박정양과 이채윤이 진행한 한성도시개조사업은 경운궁을 정궁으로 삼아 대한제국의 다양한 기념건축물을 배치한 방사상 도시 구조를 지향했다. 고종황제는 새롭게 기획된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에서 1899년 경희궁의 관병식 같은 근대적 대내외 행사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은 경운궁을 중심으로 방사상 도시 구조를 지향한 한성도시개조사업을 통해 극장국가의 무대로 구조화되었고 동시에 제국의 기억과 의미를 재맥락화하여 신민들에게 환기시키는 문화적 환경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담당할 수 있었다. 또한 고종황제는 선조대의 어진과 자신의 어진을 제작해 진전에 봉안하는 의례 과정을 통해 한성 이외의 지방에 거주하는 신민들을 제국의 신민으로 통합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황제의 어진은 가시화될 수 없는 신성한 대상이었던 만큼 고종황제의 어진 제작이 극장국가의 효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신민들에게 보여지는 어진 봉안 행렬과 그 과정을 통해서였다. 남아있는 기록으로 확인컨대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의 가마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앞세워 이뤄진 어진 봉안 행렬은 경운궁에 존재하는 황제의 신체를 제국의 신민에게 살아있는 지리적 실체로 나누어 주는 의식에 다름 아니었다. 한편 대한제국 황제의 거둥과 순행은 일본 황실의 패전트나 서구의 관병식과는 달리, 신민들과 황제가 서로 보고 보여지는 개방된 시선의 가시성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대한제국의 신민들은 비현실적이고 신성한 존재로 인지하고 있던 정치적 상징인 황제의 신체를 생물학적 인간의 신체로 지각하고 동일시함으로써 제국을 승인하는 공감을 연기할 수 있었다.

키워드

극장국가(theater state), 대한제국(Daehan Empire), 스펙터클(spectacle), 국가의례(national ceremony), 집합적 기억(collective memory), 문화적 퍼포먼스(cultural performance), 무대화(Inszenierung), 지리적 실체(geo-body), 거둥(Gae-Dung, the korean pagent), 어진(A-Jin, portrait of the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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