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병자호란 이후 사회통합의 이름으로 제기된 충절과 정절의 담론을 두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분석했다. 먼저 전란 시 강화도에서 화약고의 폭발로 죽은 김상용(1560-1638)이 충절지사(忠節之士)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사건 직후 사고사(事故死)로 보고된 그의 죽음이 사절(死節)로 결정되는 과정에는 특정 집단의 정치권력이 개입되었음을 주장했다. 특히 어떻게 죽든 죽음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충절 개념과 충신의 후손에게 주어지는 정치⋅경제상의 특혜 등은 죽음을 과도하게 의미화하는 요인이라고 보았다. 이에 김상용 사절론이 안고 있는 논리적 오류를 드러내면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했을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는 김상용의 ‘자결’에 사용된 화약고의 군사적 의미를 따지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죽음이 사절(死節)이라면 곁에 있다가 의도하지 않게 죽은 수많은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다음은 청군(淸軍)의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속환녀(贖還女)를 둘러싼 담론에 주목했다. 당시 쟁점이 된 것은 속환 부녀와의 이혼 문제인데, 적에게 끌려갔던 여자에게 조상 제사를 맡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전란의 피해자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이런 방식의 주장은 여성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적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적에 대항하여 자결한 여성은 열녀가 되는 한편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여성은 죄인이 되는 상황이었다. 환향녀 보호를 강조하는 국가 정책에 반발하며 그녀들을 정절을 잃은 부녀로 공식화한 정치 집단에 주목하여 김상용 충절론과의 연계성을 밝혔다. 충절과 정절이 병자호란이라는 구체적인 사건과 만나 어떻게 구현되고 해석되는가를 통해 정치권력과 젠더권력이 빚어낸 조선후기 사상의 특성과 한계를 논의했다.

키워드

충절, 정절, 젠더, 병자호란, 김상용, 속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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