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형법의 근본원칙인 책임(주의)원칙은 사실 현행법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음에도학계와 실무 모두로부터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동 원칙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며 그 내용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 현행법은 범죄인의 책임을 묻기 위해 그의 의사자유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달리 말해 형법의 책임원칙은 의사자유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논의는 일천하다. 최근 들어 시대의 관심대상으로 떠오른 인지심리학ㆍ인지사회학과 뇌 영상기술을 기반으로 한 뇌과학은 또 다시 자유의사와 책임원칙, 그리고 형법의 정당성에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도전이 새로운 것인지, 형법에 던질 수 있는 옳은 질문인지를 이 글에서 검토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과학적 발전이 던지는 다양한 물음들, 즉 인간의 뇌의 작동방법, 몸과 마음의 관계, 뇌와 정신 상호관계 등의 물음은 현행 형법의 근본원칙의 하나로이해되고 있는 책임(주의)원칙에 대한 모종의 새롭고 강력한 도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형사법적 책임인정을 위해 대답해야 할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방식이 ‘보안처분법으로 탈바꿈하자’는 것이거나 ‘예방형법으로대체하자’는 것이어야 할 필연성은 찾기 어려우며, 이러한 입장에 동조할 필요도없어 보인다. 형법이 이러한 결정론과 비결정론에 답해야 한다면, 결국 당대의 사회규범으로서의 형법의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러운 귀결로 보일 수도 있을것이며, 형법을 폐지하고 형법의 대체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합법적이며 합리적인선택일 것이다. 책임부과의 전제가 이러한 비결정론에 근거한 의사자유라면, 그전제부터 불확정한 상태에서 국가가 정한 범죄라는 이름의 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인간에게 도덕적 비난이 깔려 있는 형벌을 부과하는 현행 형법은 독재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행 형법은 인간의 자유의사, 결정론과 비결정론, 뇌와 정신, 몸과 마음에 대한 어떠한 철학적 혹은 자연과학적 의견을 따르는가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형사법적 책임인정여부의 기준을설정해 놓고 있기 때문에, 현행법 상태 하에서 향후의 해석론적(de lege lata) 과 제는 어떤 비정상을 심신장애로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최신지견을 형법적용에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별다른 의심 없이 마치 불문의 헌법적ㆍ형사법적 원칙처럼 그저 그렇다고 믿어 왔던 ‘의사자유에 기초한 책임’은 현행법 어디에도 선언되거나요구된 바 없다. 만약 그런 의미의 ‘책임원칙’을 담고 있는 ‘책임’이라는 단어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형법을 그런 형법으로 고치려고 한다면(de lege ferenda), 이제부터 의사자유와 책임원칙에 대한 제대로 된 우리의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키워드

책임(주의)원칙, 책임능력, 의사자유(자유의사), 비난가능성, 타행위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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