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이 논문은 1910년 한국병합 무렵 일본의 교육과정 가운데 역사교육이 어떻게 위치했으며 역사교과서에 조선사 관련 기술, 특히 조선 고대에 관한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교수되었는지를 검토한 것이다. 한국병합 무렵 일본의 대표적인 학자들 가운데에는 한국병합이 고대일본의 한국지배에서 기원한 ‘쾌거’라고 환영하는 논조가 대부분이었지만 고대에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설은 역사적 실재가 아니라고 비판한 논조(시라토리 구라키치)와 한국병합이 일본에게 큰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위구하는 견해(다케고시 요사부로), 이에 한 발 더 나아가서 제국주의적 침략정책을 공격하는 시선에서 한국병합을 비판한 이시카와 다쿠보쿠, 고토쿠 슈스이 등의 주장도 보였다. 그러나 1910년 이후 역사교육은 역사학자의 학문적 입장과는 달리 국체의 관점에서 봐야하고 역사연구의 결과가 국민도덕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고대 한국에 대한 일본지배설을 부정한 기타 사다키치가 오히려 고대한국에 대한 일본지배설을 명시한 역사교과서 편찬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시기 일본의 역사교육에서 조선에 관한 부분은 일본과의 관계이거나 중국과의 관계에서만 다뤄졌다. 『동양사』 교육은 오로지 중국사에 국한되었으며 조선사는 교수되지 않았다. 외국역사 교육에서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방제국과 서구제국으로 나뉘어 교수되었는데 조선은 「동방제국」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1909년 9월 발행된 『심상초등학교 일본역사』 제1권은 심상초등학교 5학년에서 교수되었는데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하여 신라가 복종을 맹세했다는 내용이 상황을 묘사한 창작이 덧붙여져서 서술되었다. 1910년 9월 발행된 2권(6학년용)에는 한국병합이 한국황제가 통치권을 양도하여 이뤄졌다고 적었다. 중등학교 역사교과서 중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미네기시 요네조의 『신편일본약사』(1908), 동양사는 구와바라 지츠조의 『동양사교과서』(1907)인데 임나가 조공을 바쳤고 백제가 복속했고 고구려도 조공을 바쳤다고 기술하였다. 이와 같이 당시의 역사교과서에서 조선 고대 관련 기술은 「일본서기」, 「고사기」 신화를 비판적으로 서술한 것은 없고 한국병합에 대해서는 「병합에 관한 조서」를 부연하는 기술이었다. 이는 국민국가 형성기와 제국주의 시대의 역사교육에 공통되는 大國 내셔널리즘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황국사관이었다.

키워드

한국강제병합,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기타 사다키치(喜田貞吉), 일본의 역사교과서, 신공황후, 역사왜곡, 황국사관, 대국 내셔널리즘

참고문헌(15)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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