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콘텐츠를 그 공정성을 기준으로 심의 및 제재(이하 “심의”)하는 대한민국의 행정기관이다. 한국의 공정성 심의는 지난 3-4년 동안 정부가 추진하는 인사, 입법 및 무역정책 등에 관한 보도가 정부에 공정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이들 보도를 제재를 하는 데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용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헌법은 다른 여러 나라들의 헌법처럼 ‘검열’을 포괄적으로 금지할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사전검열’만을 헌법에 의해 금지되는 검열에 포함시켜 왔다. 그와 같은 정의는 너무 편협하며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검열에 대응되는 개념인 사전제재(prior restraint)는 사전검열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시행하는 사후검열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리하여 행정심의는 사후검열이든 사전검열이든 신속한 후속사법심사가 예정되어 있거나 심의자의 재량이 급격히 제한된 경우에만 헌법적으로 허용되어 왔다. 이 때문에 세계의 법원들에 의해 명시적으로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행정심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단지 방송분야에서만 전파자원의 희소성과 이에 따른 방송의 공공재로서의 성격 때문에 존재하여 왔고 헌법적으로 용인되어 왔다. 그렇다면 방송분야에서의 행정심의에는 어떠한 헌법적 한계가 적용되어야 할까? 방송은 공공재이므로 국가가 공공재의 이용을 관리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방송에 대한 행정심의가 용인된다. 그렇다면 방송에도 공공재관리 관리에서 일반적으로 국가가 따라야 할 의무가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국공유재산의 운영과 표현의 자유와의 관계에 있어서 ‘견해 차에 따른 차별’(viewpoint discrimination) 금지의 원리가 판례로 정립되어 있다. 견해 차에 따른 차별 금지 원리는 국가가 논쟁 자체를 허용하면서 논쟁의 한 쪽 편을 들거나 주류(orthodoxy)를 형성하려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운영하는 재원이나 공간에 대한 접근을 특정 그룹에는 허용하고 그에 반대되는 입장의 그룹에 불허하는 것은 금지된다. 그렇다면 방송의 공정성 심의도 여타의 이유로 예컨대 소위 ‘편향된’ 방송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방송에서 배제하게 되는데, 이러한 행정행위가 실질적으로 논쟁의 한 쪽 편을 배제할 수 있다. 가장 방송에 근접한 예로, 미연방대법원은 교과서검인정에 있어서 “국가가 정사(正史)를 세우려 해서는 아니된다”며 국가 개입을 거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견해 차에 따른 차별’금지 원리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미연방대법원이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공유재산의 운영에 있어서도 평등권을 침해하거나 다른 기본권에 중대한 제한을 가하는 행정행위를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 기준을 방송이라는 공공재를 관리하는 행정행위인 방송심의에 적용해 보면, 이 행정행위 역시 방송심의의 목표와 관련 없는 자의적인 차별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불법적이지는 않으나 국민 다수의 윤리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 즉 유사(類似)불법정보를 규제하는 것 자체는 용인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란하지는 않으나 선정적인 내용을 방송에서 배제하는 것은 용인된다. 그러나 ‘공정성’심의의 경우 전혀 가벌성이 없는 주장이 반대주장과 곁들여져 있지 않다고 하여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다면 공정성 심의 자체를 폐지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 그리고 케이블과 같은 대체미디어의 확대가 더해지면서 방송분야 공정성 심의는 미국, 일본, 독일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영국에서는 BBC가 아닌 방송사에 대해서만 남아있고 온전한 행정심의의 형태는 한국과 프랑스에서만 남아 있다. 또 방송 공정성 심의의 목적은 다양성의 확보로 보이는데, 이 목적 즉 일정한 독점을 보장 받는 이상 그 독점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방송해야 한다는 다양성의 입장이란 개별 프로그램의 다양성보다는 외적 다양성에 부합하는 것이므로 공정성 심의를 개별 프로그램별 심의가 아니라 전체적 심의로 전환할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저자는 공정성의 원래 목표는 다양성 즉 다양한 견해가 소통될 수 있는 공공의 장을 유지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공정성은 방송국들이 모든 개별프로그램 내에서 항상 상충하는 입장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할 의무로 해석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자의적인 차별의 가능성이 높은 사유에 의한 제재는 공정성 심의에서 배제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공정성(fairness)심의를 폐지하게 된 데에도 당대의 정권들이 행정심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하였다. 저자는 공정성 심의가 그 심의자를 통제하는 정부에게 방송내용이 불공정한가를 심의하는 데에 적용되는 한 미국헌법에서 금지되는 견해 차에 따른 차별(viewpoint discrimination)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와 같은 위헌의 우려를 피하기 위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부 추진 사업에 대한 보도나 논평에 대한 공정성 심의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키워드

공정성, 방송, 검열, 견해 차에 따른 차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참고문헌(16)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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