롼링위가 1910년 상하이의 하층계급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서 1935년 비극적으로 자살하기까지, 그녀의 인생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이 있지만 불일치한 부분이 많은 가운데 다음 기록은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롼링위와 어머니는 상하이의 부호인 장씨 댁에 하녀로 들어간다. 롼링위의 어머니는 대도시 상하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딸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 기독교 학교인상해숭덕여교에 입학시켰다. 이 학교는 명문 귀족 학교였으나, 이 학교 이사인 장씨에게 롼링위의 어머니가 간절히 부탁하여 절반의 학비로 다닐 수 있었다. 롼링위가 16세가 되자 장씨 가족은 점점 쇠락하게 되었고, 롼링위는 학교를 그만두고 장씨의 넷째 아들인 장다민과동거를 시작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그녀는 17세가 되는 1926년에남몰래 밍싱영화사에서 스크린 테스트를 받았고, 정정추 감독의 <명목상의 부부>에 출연한다. 이후 10년 동안 밍싱과 롄화영화사에서 안정적으로 배우 생활을 하고 1935년 사망할 때까지 30여 편의 영화에출현한다. 1930년 쑨위 연출의 <옛 수도의 꿈>에서 기녀이자 첩인 배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으며, 같은 해 <야생초>(쑨위)에서는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여인의 비극적인 내면 연기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롼링위는 상하이 최고의 여배우로 등극했다. 영화 커리어 면에서 안정적이고 성공적이었던 반면, 장다민과 얽힌 롼링위의 사생활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장다민은 생활 능력이없고, 도박과 기녀를 좋아해 그녀에게서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여 두사람의 행복은 얼마가지 못했다. 19세에 장다민과 헤어지고자 했던시도는 자살 실패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1933년, 롼링위의 인기가 정점에 달해 있을 때, 그녀는 변호사를 통해 장다민에게 매달 생활비를 주기로 하고 둘 사이의 동거 관계를 끊는 약정서를 작성하고, 몇 달후, 거부인 탕지산의 거처로 옮긴다. 탕지산은 당시 고향에 본처가 있었고 대배우인 장즈윈과 동거 중이었다. 탕지산은 롼링위가 속해 있던롄화영화사에도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었다. 장다민과 탕지산이 재물절취와 명예훼손으로 각각 서로를 고소하자, 언론은 롼링위를 스캔들의 중심에 놓고 연이어 대서특필,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유명 여배우와 두 남자의 삼각관계에는 거짓이 뒤섞이면서 그녀에게 적대적인 기사들이 넘쳐났다. 악의적인 헛소문과 악화된 여론 속에서 그녀는 1935년 생애 최고의 정점에서 “소문이 두렵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살한다. 이는 당시 상영하고 있던 롼링위 주연의 <신여성>의 내러티브를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었다.
1932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던 유명한 극작가 톈한田漢(1898-1968)은 1930년대 중국영화의 부흥을 이끌었던 롄화영화사에서 <세 명의 모던여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출을 맡은 정정추鄭正秋 감독을 찾아간 롼링위는 투철한 혁명의식으로 무장한 반항적인 여직공 ‘저우수전’ 역할을 맡겠다고 요구했다.9) 과거 롼링위의 배역들이 낭만성과 고귀함을보여주는 비극적 여성들이었지만, 이 영화의 성공 이후 그녀는 자살하기 전까지 많은 좌익영화를 찍었다. 그러나 롼링위는 영화 속의 진보적인 역할과 대조적으로 실제 삶에서 남자들에 의해 고통 받는 위약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영화 캐릭터 이미지와 실제 삶은 모순적인 괴리감을 드러내었다.
롼링위가 주연하고 우융강이 연출한 무성영화 신녀 10)는 ‘중국영화사상 10대 명편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좌익영화들 중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상하이에서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주인공은 아들이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투쟁한다. 영화는 주인공을 통해 사회의도그마와 관습을 압도하는 여성의 모성애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여기서는 한 아이의 어머니인 동시에 지식인이 아닌 사회적 하층계급인주인공이 선택한 삶의 한 방법으로써 육체의 매매를 과연 당시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도덕이란 잣대로 억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11) 즉 근대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상하이 모더니티의 모순들은 영화의 여성 형상을 통해 구체화되고, 또한 여성의 몸을 관통하며 전개된다. 미리엄 한센이 지적하듯이, “19세기 문학 전통과 마찬가지로, 여성은 도시 모더니티의 알레고리, 혹은 환유의 기호로써 기능한다.” 한센은 또한 “여성 주인공은 위기에 처한 문명의 메타포로써 사회적 부정, 억압, 강간, 좌절된 로맨틱한 사랑, 거부, 희생, 매춘 기능 등의 중심으로 위치한다”고 설명하고 있다.12) 레이 초우또한 ‘원시적 열정’이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 혹은 문명이 위기의 순간에 ‘기원’(역사, 전통)과 ‘원시적인 것’(여성, 어린이, 자연)에 몰두하고 이를 통해 자기의 지배적인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13) 역사적으로 여성은 급격한 사회변동의 시기에 국가나 민족적정체성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흔히 있어왔다.14) 위기의 시기에여성을 동원하기 위해 호명하는 방식이나 식민지를 여성화하고 성애화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위계화를 더욱 두드러지게 해서 그 사회에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도 여성은 호출되고 여성의 몸은 전시된다.
<신녀>에서 주인공 여성의 얼굴과 몸은 추상적으로 뭉개진 상하이의 불빛과 함께 병치됨으로써 환유적으로 사회의 모순을 가리킨다. 아들을 홀로 키우는 그녀는 매춘부이다. 1930년대 상하이 문화는 전통과근대, 봉건제와 자본주의, 식민과 탈식민, 도시와 농촌, 토착과 이주, 서양과 동양, 도덕과 퇴폐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각종 이항대립의 경연장이었다. 매춘부인 영화의 주인공은 여성의 몸을 통해 동시대의 모순을 실체적으로 드러낸다. 레이 초우가 분석하듯이, <신녀>의 매춘부는 동시대 상하이 문화의 상품화와 물신화로부터 기인한 억압받는 여성의 모습이요 섹스와 여성성에 대한 상품화이기도 하다.15) 동시에 광의적으로는 전통과 근대의 대립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상하이도시민들의 자화상이다. 몸을 파고 사는 노동자의 위치에 매춘부를 놓고, 그녀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착취당하는 노동 소외를 몸으로 입증하는 슬픈 상하이의 동시대 자화상이 된다.
이 영화는 매춘부를 통해 동시대 사회 제도의 모순됨을 지적하고있다. 또한 매춘부와 소외된 노동자로 상징되는 하층계급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중국 사회가 계급 해방으로 나아가는 사회 제도 혁신에 대한 공통감각을 꾀하고 있다. 영화는 모성애가 강한 어머니이자 매춘부인 주인공을 도덕적으로 매우 고결하고 숭고한 인간형으로 묘사함으로써 이러한 목적에 달성하는데, 이에는 롼링위의 스타페르소나가 매우 적절하게 기여한다. 그녀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늘숭고하고 비극적인 주인공을 맡았고 뛰어난 감정 연기는 영화 캐릭터와의 동일화를 불러일으키는 기제로 작동했다. 주인공은 매춘부이지만정의롭고 도덕적인 성격을 가졌다. 이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결말에서 구원받지는 못하지만, 이는 “구원의 가능성을 보다 큰 사회에, 스케치되고 현상된 미래에 두었기 때문이다.”16) 결말에서 주인공은 감옥에 갇혔지만, 도시 부르주아 계급인 교장이 새로운 세대인 그녀의 아들의 교육을 후원하고 지지하기로 하는 것은 사회동원의 집단적 힘을만들어내려는 알레고리로 독해할 수 있다.
<신녀>와 같은 해에 제작된 <신여성>17)은 롼링위의 죽음과 예지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당시 여배우 아이샤의 자살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1935년 2월에 상영되었고, 한 달뒤 웨이밍 역을 맡았던 롼링위도 웨이밍과 마찬가지로 수면제를 먹고 자살한다. 아이샤의 죽음, 극중 웨이밍의 죽음, 롼링위의 죽음은 한데모여 당시 상황에 대한 여러 알레고리를 만들어내는 영화사상 중요한 문화적 사건이다. 아이샤는 배우,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로 <모던-여성>이라는 시나리오를 쓰고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었는데, 연애의 좌절과 생활의 압박 때문에 자살했다.18) 그리고 남성 시나리오 작가 쑨스이가 아이샤의 비극적인 인생을 각색해서 시나리오 <신여성>을 썼다. 영화의 주인공 웨이밍은 영화 속에서 소설 <애정의 무덤>을 쓴다. 그리고 남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출판계와 저널리즘 커뮤니티에 의해 거짓으로 쓰인 글이 점점 커져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부풀어지고 남성 시선에서 훔쳐보기 대상이 되자 자살하고 만다. 스타 롼링위는 “소문이 두렵다”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한다.
다이진화에 의하면, <신여성>의 갈등은 신여성과 부권/남권 문화의 비극적 충돌로 볼 수 있지만, 중국 여성작가 쑤쑤가 주장하듯이, 이영화의 갈등이 5.4 시기 역사의 지표에 등장한 신여성과 근대 중국의 유민인 구시대 문인 간의 충돌일 수도 있다.19) 페미니즘 시각에서는상업주의와 스타 제도 아래서 발생한 여배우의 비극으로 보며, 중국 관변 영화사에서는 1930년대 좌익영화와 우익 신문업간의 충돌로 본다.20)
롼링위의 죽음과 영화 <신여성> 텍스트를 결부시켜 볼 때, 본고는 남성적 글쓰기 대 여성의 목소리라는 구도를 몇 가지 예를 들어 추가하고자 한다.
첫째, 자살을 시도한 웨이밍이 자신의 추문을 거짓 기사화한 신문을 보고서 “살아서 복수하고 싶다”고 울부짖는 것. 영화에서 웨이밍은 뛰어난 미모와 활달한 직업 활동, 신지식을 습득한 신여성이지만, 그녀는 남성들의 훔쳐보기의 시각적 대상일 뿐이다. 그녀의 프로페셔널리즘은 번번이 스펙터클로서의 여성-몸 아래 가려져 좌절된다. 일례로, 그녀는 <연애의 무덤>이라는 소설을 틈틈이 써서 서로 사적인 애정이 은근히 움트고 있는 신문기자 치웨이더를 통해 편집장에게 전달하는데, 편집장은 웨이밍의 소설이 아니라 그녀의 아름다운 사진 때문에 출간을 허락한다. 그 후 치웨이더는 웨이밍의 여성작가로서의 명성을 파멸시키기 위해, 왕박사의 거짓 증언을 바탕으로 그녀의 과거를조작하여 보도한다. 웨이밍은 강력한 남성 커뮤니티의 연대의 힘에 의해 파멸된다.21) 웨이밍의 거절에 앙심을 품은 왕박사의 거짓 증언을그대로 받아쓰기 하는 남성 신문기자, 여성작가의 재능과 성공을 시기하는 출판 권력 등 남성간의 연대는 신여성의 목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딸의 죽음으로 인해 웨이밍은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녀가 살고자 하는 이유는 이러한 강고한 남성 커뮤니티의 연대에 대한 울분에찬 대응이다. 그래서 그녀가 살고자 하는 이유는 “살아서 복수 하고싶다”는 한마디에 집약적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심지어 남성에 대해 위협적인 신여성의 목소리는 봉쇄되고 만다.
둘째, 웨이밍의 소설이 출간되지 않는 것과 대조적으로 그녀가 작곡한 ‘신여성’ 노래는 여성 노동자 집단에 의해 힘차게 울려 퍼지는것.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남성간의 강력한 연대는 다양한 계급의 여성간의 연대 역시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신여성>에서 좌익영화인인 차이추성 감독은 분명한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서는데, 그는 새로운 지식계층으로 편입된 여성 노동자 리아잉에게 웨이밍의 실패한 신여성 프로젝트를 전이시킨다. 따라서 영화는 여러 가지 인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계속적으로 웨이밍이 리아잉에 대해 느끼는 콤플렉스를 표출한다. 리아잉은 웨이밍처럼 여성적 성별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무성적 신여성이고, 웨이밍이 아침 일찍 카바레에서 돌아올 때, 리아잉은 아침 일찍 노동현장으로 출근하고 저녁이면 야학에서 동료 여성노동자들을 교육한다. 그는 ‘신여성’이라는 노랫말을 쓰고 웨이밍의 참여를 독려한다. 웨이밍이 작곡한 노래가 웨이밍의 죽음 이후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결말은 영화가 프티부르주아 신여성에서 프롤레타리아 신여성으로의 이행을 자연스럽게 선포하는 알레고리가 된다. 다음의 ‘신여성’ 노랫말은 무성의 신여성 노동자 집단이 이상적인 혁명의주체임을 표현한다. “연애를 꿈꾸지 않고 / 우리 자중합시다! / 기생충이 되지 말고 / 우리 노동합시다. / 새로운 여성은 고난 속에서 탄생합니다. / 새로운 여성은 각성 속에서 탄생합니다. / 새로운 여성은 여성 대중으로 탄생됩니다. / 새로운 여성은 사회의 노동자입니다. / 새로운 여성은 신사회를 건설하는 전위대입니다.”22) 결국 “살아서 복수하고 싶다”라는, 전형적인 신여성 상징으로 역사화될 웨이밍의 유언은여성 노동자 계층에게 신여성의 희망을 부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중국 영화 스크린의 한 축을 담당했던 신여성의 이미지는 죽음을고하고 새로운 여성상의 출현을 알리는 것으로 끝난다. 이제 개인주의담론의 시대가 웨이밍의 죽음이라는 상징적 사건으로 막을 내리고 계급이라는 집단이 민족의 해방을 향한 중요한 동력임을 영화는 주장하고 있다.
셋째, 롼링위가 자신을 둘러싼 저널리즘에 대해 “소문이 두렵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한 것. 무성영화 스타 롼링위가 가진 스타 페르소나는 그녀가 연기했던 표정이 풍부하고 비극적인 역할에 근거하고 있었으며, 그녀의 생활은 좋든 싫든 간에 침묵의 이미지에 맞추어 예견되었다.23) 그러나 상하이 토키영화가 표준어로 북경어를 채택했을때, 광동출신인 롼링위의 근심은 어떠했을까.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있는 스타 페르소나 대로 ‘침묵의 외침’을 선택한다. 롼링위가 마지막으로 발언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몸을 이미 떠나 사후의 언어로남았다. “소문이 두렵다”는 롼링위의 마지막 문장을 논하면서 루쉰은신문기자들이 기사를 조작하는 것에 대해 비난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유리하고 타자, 특히 여성에게는 불리한 표현으로써 유지되는 인쇄 매체 권력에 경종을 울렸다. “상하이 신문과 타블로이드에 실리는 ‘사회뉴스’는 권위자에 의해 간추려진다. 그러나 몇몇 묘사에 사악한 경향이 부가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특히 여성에 대해 그러하다. 이러한 경향은 대단한 남자나 고관대작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자의 나이와 외모는 일반적으로 정직하게 묘사되는 반면, 여성의 인상을 전해 받을 때에는 완전한 윤색이 가해진다.”24) 롼링위의 자살은 그녀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언어, 즉 영화적인 침묵의시각적 제스처에 맞추어 ‘보여주기’ 한 것이기 때문에, 남성의 신문권력과 여론이 가하는 추문의 ‘말하기’보다는 훨씬 더 믿을만한 진정성을 가진다. <신여성>과 더불어 다양한 논의를 일으킨 롼링위의 성대한 장례식 후에 1935년 ‘노라의 해’가 도래했다.25)
영화에서 온갖 사회의 모순들을 체현하고 있는 여성의 몸은 흔히 죽음으로 마감됨으로써 서사를 안정적으로 봉합하는 경향이 있지만,<신여성>은 이러한 사회 현실에 맞서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함으로써사회현실의 문제에 무관심한 대중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즉 웨이밍을 자살로까지 몰고 가는 비정한 사회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라는 환상 속에서, 그리고 힘든 현실 속에서 중국의 여성성은 처벌을 받았다”26)라거나, “근대 ‘신여성’ 담론이라는 남성의 시선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서 ‘여성해방’의 이름으로 수행되었던 여성에 대한 남성적 사회 질서의 처벌이었다”27)라는 기존의 주장은 다소 단순화된 논리로 보인다.
1) 임대근 외, 『중국영화의 이해』, 동녘, 2007, 48쪽.
2) 앞의 책, 43쪽.
3) 슈테판 크라머, 황진자 옮김, 『중국영화사』, 이산, 2000, 48쪽.
4) 앞의 책, 49쪽.
5) 임대근 외, 앞의 책, 47쪽.
6) 앞의 책, 48쪽.
7) 임대근 외, 『20세기 상하이영화: 역사와 해제』, 산지니, 2005, 26쪽.
8) 청부가오(1898년생), 쑨위(1900년생), 차이추성(1906년생), 우융강(1907년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