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1920년대에 일제가 문화정책을 실시하면서, 당대의 지식인들은 일제가 기획한 사회 체계 내의 구성원이 될 수밖에 없었고, 조선에서의 교육, 언론, 집회, 종교 활동 등은 모두 총독부 산하 기관에 소속되거나 허가를 받고 그들의 검열과 지침에 따라 실행되는 체계로 흡수되어 갔다. 젊은 문인들은 도식적인 계몽주의와 강요된 일제의 군국주의로부터 도피하여 서구의 낭만주의와 데카당스 문학에 도취되기도 했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이 축척해온 생활 세계의 전통은 식민지화 정책이 실행되는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지식인들의 의식 지평에서 서서히 망각되어 갔다. 이러한 시기에 김소월은 자신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생활 세계에서 이어온 민족의 전통을 발견하고 일제가 수행하는 일제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희미해져가는 공동체의 본래성을 시작품에 재현한다. 생활 세계는 일반화된 지식이나 담론체계가 구축되기 이전에 우리가 늘 이웃과 사물을 접하고 반응하면서 살아가는 체험이 이어지는 일상이다. 김소월의 시적 주체는 생활 세계에서 체화된 전통을 발견하고 그것을 삶의 준거로 삼는다. 양심은 자기 내면에 내재된 각자의 영혼으로부터 비롯된다. 영혼은 실제 삶의 준거로 작용하며 내면의 근원자리에 위치한다. 김소월에게 영혼은 당시 상징주의를 추구하는 젊은 시인들처럼 현실성이 결여된 관념적 상징이 아니라, 생활 세계의 윤리적 실천 가운데 체험할 수 있는 존재이다. 시 「故鄕」의 시적 주체는 일제가 만들어가는 근대 사회 가운데 부평초처럼 확고한 삶의 근거를 갖지 못하고 헤매는 ‘그대’에게 본래 자기가 거주하는 곳,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조언한다. 마음의 고향에 사는 ‘나의 넋’은 당대 젊은 시인들이 시적 지향으로 삼고 있던 “영혼”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양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내면의 선험적 지평을 발견하면서 더욱 확고해진 김소월의 시적 주체는 시대적 모순으로 민족 공동체가 겪고 있는 고난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시 「나무리벌 노래」는 일제와 대지주의 수탈에 삶의 터전을 잃고 만주로 이주해 가면서 겪는 애환을 그리고 있으며, 시 「옷과 밥과 자유」의 시적 주체는 외부의 타자에 의존하지 말고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들’처럼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힘을 믿고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시 「인종(忍從)」에서 시인은 당시 젊은이들이 향유하고 있는 문화 현상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역사성에서 자기-주체의 토대를 만들어 가라고 그들에게 조언하고 있다. 시 「봄바람」에서 시인은 제국주의에 의해 전파되는 근대문화가 전 지구적으로 전근대적 규범에 의해 억압되었던 욕망을 자극하면서, 각각의 토착민이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살아 왔던 기존 삶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다. 김소월의 후기시에 나타난 시적 주체는 생활 세계에서 현실에 대응하는 자기 정립의 가능성으로 내면의 ‘영혼’을 상정하고 있으며, 각자에게 육화되어 있는 삶의 역사성에서 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김소월은 그러한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공동체의 전통에서 비롯되는 양심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을 성실히 실천하였고, 합리적 사유와 자유 의지로 자기 주체를 바로 세워가는 진정한 근대 시인이 되어갔다.

키워드

시적 주체, 김소월, 생활 세계, 내면의 영혼, 삶의 역사성, 식민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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