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박화성 작품 중에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작품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국가주의적 계몽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언제나 균열적으로 침묵했던 전쟁의 이야기를 작가의 말년 작품에서 다시 끄집어낸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작품들도 1977년 작품집 『휴화산』(창작과 비평사)에 실렸던 단편들과 그 이후의 작품들, 자전적소설 『눈보라의 운하』(『여원』 연재, 1963)로 전쟁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는 자전적 작품들이다. 칠순이 넘은 노년의 작가가 다시 전쟁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말년의 작품에서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쓰기가 시도되고 있다. 최정희, 박완서의 전쟁 체험 다시쓰기와도 비교되는 이러한 증언과 기억의 서사가 박화성의 경우는 늘 침묵과 멈춤으로 기억의 한 부분으로 되돌아오는 특징을 보인다. 박완서의 작품이 오빠의 죽음에 대한 다시쓰기를 통해 조금씩 진실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면, 박화성의 경우는 늘 그 자리에 다시 멈추어 선다. 『눈보라의 운하』에서는 좌익에 관련된 듯한 아들이 어느 날 동료들과 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짧은 기술로 침묵시키고 있다. 말년의 작품인 「미로」에서는 서울에 두고 피난길을 떠났던 딸의 이야기를, 「마지막 편지」에는 행방불명된 아들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다. 특히 「마지막 편지」는 작가의 생애에서도 거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작품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34년 동안 입에 담지 못 했던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초혼가와도 같은 작품이다. 그러나 그 역시도 완장 찬 사나이들과 함께 나간 아들의 이야기는 모호하게 끝나고 만다. 세대의 차이나 정치적 상황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직접 사상검증의 대상으로 살아왔던 작가이기에 자신에 대한 이념적 알리바이나 자식의 죽음에 대한 알리바이를 서사화하기는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전쟁체험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불가능함을 반영하는 특징이 감정에 대한 서사적 침묵으로 드러나는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여성들의 자전적 소설들은 고립된 여성의 경험에 대한 소통의 글쓰기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어서 무엇인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다른 여성들과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소설과 수필의 경계를 허물고 소설인지 수필인지 혼성장르적 특징을 보이는 이유도 이러한 서사적 추동 자체가 남성작가와는 다른 경향성 때문이었다. 전쟁 경험에 대한 증언도 파편화된 주체를 사회적 보편적 자아로 통합하는 남성지식인의 서사적 증언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그 때문에 여성작가들의 전쟁 증언은 원체험의 장면으로 되돌아가 다시쓰기를 시도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원초적 사건은 단지 그것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것(역사적 진리)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이야기됨으로써 그 의미가 재해석되고 통합(서사적 진리)된다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도 여성 경험의 다시쓰기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키워드

박화성, 자전적글쓰기, 전쟁 체험 다시쓰기, 눈보라의 운하, 휴화산

참고문헌(20)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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